버거
FISH-BURGER

@ J_G1002

On the street, there's no such thing as "The End!"

사로死路 - 잔비아

이 글은 메르님(@MER_MER_CM)에게 신청한 커미션입니다.

 


 

  세상에는 부정否定 할 수 있는 것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

  단순한 이야기다. 하나의 악惡이 태어나면 하나의 악惡이 잊혀진다. 누군가를 증오憎惡할 수 있게 되면 다른 누군가는 증오憎惡할 수 없게 된다. 그게 인간이다. 어쩔 수 없는 우리들의 한계임이 분명하다. 모든 악을 뿌리 뽑고자 했어도, 그 모든 죄목을 기억하고 살 수는 없는 거다.

  이해하지 못하는 자를 위해 친히 예를 들어주는 것도 좋겠지. 그래, 뱃사공을 떠올려보는 거다. 암초가 가득한, 절벽을 내지르는 뱃사공을 말이다. 그들은 절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같은 루틴을 반복한다. 그것은 바로, 눈앞의 장애물을 떠올리지 않는 것이다. 당연한 거다. 암초에 집중한다면 암초밖에 볼 수 없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원하는 것만을 생각해야 하며, 부정否定한 생각은 의도적으로 회피해야 한다.

  알다시피 이것은 지극히 단순하고 원초적인 관점이다.

  다만 원초적일수록 본질에 맞닿아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겠지. 뱃사공에 국한해서 말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해군 역시, 이러한 원초적 의의가 있어야 한다는 거다. 우리는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떠올려서는 안 된다. 우선시해야 할 행동만을 긍정한다. 그러므로 해군의 의도는 오롯하고 분명하다. 악惡의 섬멸이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정의일 것이다. 온전한 정의는 나 자신을, 내가 믿는 세상을 조금 더 분명하게 해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당신은 당신을 부정否定하고야 말았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자충수였다. 내가 처한 상황과 그에 뒤따를 미래가 말이다. 옴짝달싹할 수 없이 흑돌에 몰린 필패의 길이었다. 어쩌면, 나보다도 당신이 먼저 바라봤던 미래일 수도 있겠지. 그러면 더더욱 떠났으면 안 됐다. 정의라는 것이 쉽게 포기가 되는 일이었나. 이 길은 잔비아 씨가 나에게 펼쳐줬으며, 잔비아 씨가 걸어야만 했던 길이었다. 하지만 그는 떠났고, 길을 걷는 것은 나뿐이었다. 이것이 진실이며 현실이다. 결말은 나지 않았지만 이것이 끝이었다, 비참하게도.

  “몇 번이고 말했지만…, 나는 돌아가지 않아.”

  당신을 앗아간 것은 어떠한 환상이었고 대가였을까. 이제 와서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는 골 D. 로저가 만든 최악의 미래에서까지 도망칠 셈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호흡을 가다듬고 그에게 예우를 다하려 노력했다.

  “민간인의 피해가 커지고 있습니다, 잔비아 씨…!”

  잔비아 씨가 돌아온다면 천군만마나 다름없을 겁니다! 부디, 정의라는 이름이 흔들리지 않게 해주십시오…. 일방적인 권유였다는 것은 이해하고 있다. 그럼에도 먼저 도망친 것은 당신이 아니었나. 잔비아 씨는 곤란한 낯으로 고개를 숙였다. 지금껏 본 적 없는 맥빠진 태도였다.

“이제 나는 해적 사냥꾼에 불과해.”

  두려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해적이 있는 곳은 어디든 전쟁터였으며 그 중심에 해군 본부가 있었으니. 게다가 행동반경이나 생활을 바꾸는 일도 쉬운 것이 아니다. 은거까지 한 경우에는 더더욱 그럴 터였다. 다만, 목숨은 정의보다 우선시 될 수 없었다. 존경하는 당신만은 그러지 말아야 했다. 내가 보고 걸은 것은 당신의 길뿐이었으니.

  “…뭐, 네가 있으니까 괜찮잖아.”

  아. 나는 그제야 당신이라는 사람을 이해했다. 아니, 이해하지 못했지만 머리로는 깨달았다. 잔비아는 단지 도망치고 있는 거였다. 책임을 회피하는 무책임한 이에게 차릴 예의 따위는 없었다. 당신이 이제 와서 목숨을 아까워할 리가. 마주해야 할 미래가 두려운 것이었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한심하기 짝이 없어서….

  “잔비아, 너는 고작 그런 것이 두려워서…!!”

  잔비아는 식은땀을 흘리며 스카프를 잡아 내렸다. 그래. 진작에 눈치챘어야 했는데. 단단히 목을 조이고 있던 당신의 스카프가 언제부터 풀려 있었는지. 정의의 상징이었던 푸른 스카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하릴없이 주름만을 품어내는 천 쪼가리가 그곳에 있었을 뿐이다. 저런 자가 前 해군이었다니. 좋게 쳐줘도 책임이 두려운 겁쟁이에 불과한 것인데. 책상을 내리치자 그의 안색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는 나와 당신의 한계일 테지. 지금 와서 당신이 바라볼 수 있는 것은 고작 죄책감이었다. 하나의 감정만을 바라보느라 정의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이 멀어버린 거다. 암초를 바라본 자는 암초밖에 볼 수 없다. 애초에 도망치고자 했던 당신이 해군에 돌아온다는 선택을 할 리가. 우습구나.

  그는 변명조차 하려 들지 않았다. 그만큼의 의지조차 사라진 것이다. 나는 어깨의 외투를 고쳐 입고는 일갈했다.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시오. 새파란 낯으로 일관하던 그가, 무언가 말하려는지 입술을 달싹거렸다. 물론, 지금의 나에게 그것을 들어줄 의무 따위는 없었음이 분명했다. 나는 그대로 그가 있는 곳을 빠져나왔다. 해군 사카즈키가 존경했던 잔비아 씨는 죽었다. 방금 저 장소에서 죽은 것이다.

  세상에는 부정否定 할 수 있는 것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지만. 살다 보면 부정할 수밖에 없는 일만 셀 수 없이 늘어난다. 단순한 이야기다. 하나의 증오憎惡가 태어났으면 하나의 존경尊敬이 잊혀진다. 그게 나다. 어찌할 줄 모르는 나의 한계이자 사로射路다. 다만 그뿐이었으며, 단지 그뿐이었다. 모든 죄목을 모른 척 하기에는 나의 정의가 너무나도 원초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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